한 지인이 성경중에 가장 읽기 힘든게 욥기라고..자신이 지나온 고난만 생각해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욥기를 읽으면 마음이 더 답답해진다고...그녀의 삶에는,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커다란 고통이 있었기 때문이긴 하나, 그때 저도 욥기에 담긴 하나님의 큰 뜻을 제 어눌한 말로 잘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결코 피할 수 없는 고난....주님은 우리에게 왜 이런 고난을 허락하시는 걸까요? 박영선 목사님의 메세지를 통해 살펴봅니다
고난, 정말 벌일까요? 욥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죠? 우리는 보통 고난을 겪으면 '내가 뭘 잘못했지?', '혹시 벌을 받는 건가?' 하고 생각하기 쉬워요. 실제로 많은 종교에서는 '착하게 살면 복받고, 나쁘게 살면 벌받는다'는 인과응보적인 관점을 기본으로 하죠. 욥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욥이 의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고난을 겪자, 그들은 욥에게 죄를 고백하라고 다그쳤죠.
하지만 욥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다고 주장했어요. 그는 왜 의인인 자신에게 이런 고난이 닥쳤는지 이해할 수 없었죠. 욥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난 = 죄에 대한 벌'이라는 공식에 의문을 제기해요. 의로운 사람도 고난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은 고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죠.
하나님은 왜 침묵하셨을까요? 욥의 절규 속 숨겨진 의미는?
고난 속에서 욥은 하나님께 계속 질문했어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하나님이 왜 자신에게 침묵하시는지 물었죠. 친구들의 다그침 속에서도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갈구했어요.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두렵게 하지 마시고 질문에 답해달라고 간청했죠.
하나님은 폭풍우 가운데 나타나 욥에게 대답하셨어요. 하지만 그 대답은 욥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 아니었죠. 대신 하나님은 창조의 위대함과 신비를 이야기하며, 악어의 힘이나 구름 창고, 파도가 멈추는 이유 등을 물으셨어요. 이는 '원인과 결과'라는 인간의 좁은 시야를 넘어, 모든 것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보여주신 것이었어요. 욥은 결국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항복했죠. 하나님은 욥에게 '도덕법'을 넘어 '창조의 자리'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광야 생활,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 뒤에 숨겨진 진실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 역시 고난의 연속이었어요.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지만, 그들에게는 물도, 먹을 것도 부족한 광야의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죠. 그들은 힘든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불평하고 원망했어요. 심지어 이집트로 돌아가자고까지 했죠. 하나님은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며 그들을 지켜주셨지만, 백성들은 여전히 현실적인 어려움 앞에서 좌절했어요.
특히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문제에서는 정탐꾼 12명 중 10명이 거인족을 두려워하며 들어갈 수 없다고 보고했죠. 이들의 불평과 원망은 결국 광야 40년 방랑과 그 세대의 죽음이라는 엄한 심판으로 이어졌어요.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나올 때는 백성들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셨지만, 가나안에 들어가는 문제는 '너희 스스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이는 단순히 구원받는 것을 넘어, '하나님이 목적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우리 스스로가 참여하고 책임져야 함을 보여주죠.
자유가 두렵다고요? 쇼생크 탈출이 보여주는 고난의 또 다른 얼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친 것은 단순히 힘들어서만은 아니었어요. 이는 '자유'에 대한 두려움과 책임감의 부재에서 온 반응이었죠. 영화 '쇼생크 탈출'의 이야기는 이러한 자유의 역설을 잘 보여줍니다. 주인공 앤디는 감옥에서 멋지게 탈출하지만, 평생 감옥에서 살아온 '레드' 같은 죄수들은 오히려 감옥 밖의 자유를 두려워하죠.
레드는 가석방으로 출소한 후, 화장실에 갈 때도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고 말해요. 감옥 안에서는 정체성이나 책임질 필요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됐지만, 자유로운 세상에서는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에요. 그는 결국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죠. 이처럼 고난은 때로는 우리에게 '책임 있는 존재'가 되도록 도전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고, 그 자유를 통해 올바른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지는 법을 배우기를 원하시죠.
고난은 성장의 기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Q: 고난은 정말 우리에게 벌일까요?
A: 아니에요. 성경은 고난을 단순히 죄에 대한 벌로 여기지 않아요. 물론 우리가 잘못해서 겪는 어려움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잘못을 통해 우리가 '배우고 성장하기'를 원하시죠. 마치 수도꼭지를 잠그고 넘쳐흐른 물을 치우는 것처럼,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후회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해요
Q: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실까요?
A: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을 지우는' 회개에만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성장'하기를 바라세요. [93]이는 마치 테니스 경기에서 네트가 방해가 아니라 경기를 더욱 예술적으로 만드는 요소인 것처럼, 고난이라는 장애물이 우리를 더욱 멋진 사람으로 만드는 훈련 과정이라는 의미예요. [107]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히 '복받는 사람'이 아니라, '예술 작품 같은 인생'을 만들어가는 존재로 부르신 거죠. [120]우리는 '도덕의 묶여있지 않고, 규칙을 넘어' 창조의 하나님을 닮아 용서하고 배려하며 참을 줄 아는 존재로 자라야 해요.
Q: 고난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하나님은 우리에게 '책임을 질 정체성'과 '책임을 져야 하는 가치'에 대해 도전하세요. 이 과정은 우리가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워나가는 시간이죠. 우리는 고난 속에서 비명 지르고 원망하기보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책임 있는 존재로 나아가야 해요. 때로는 어린아이가 학교 가기 싫어하듯 힘들지만, 학교가 인간을 훌륭하게 만드는 필수적인 과정이듯이, 고난은 우리를 훌륭하게 만드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고난의 열매, 어떻게 맺을 수 있을까요? 멋진 인생을 위한 지혜!
고난을 겪고 나면 우리는 '안목'을 얻게 돼요. 과거에는 몰랐던 하나님의 일하심과 내 인생 속에서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거죠.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이 부분적으로만 알던 것을, 이제는 전체를 보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얻은 안목으로 우리는 삶의 짐을 원망하지 않고 기꺼이 질 수 있게 돼요.
나이가 들면 책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이 든 책임'이 생기듯, 고난을 통해 우리는 '책임감' 있는 존재로 성숙해집니다. 공동체 내 갈등 속에서 어른이 양쪽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나아갈 길을 제시하듯이, 우리는 고난 속에서 분별력을 가지고 책임감을 발휘해야 해요.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을 통해 '멋진 인생', '예술 작품 같은 인생'을 만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은 단순히 고통이 아니라, 우리를 더 깊이 있는 존재로 만들고, 하나님과 함께 화음을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과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