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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란 _복음의 능력 1 | 복음의 삶 2과

by 1-35820 2025.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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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능력: 죄와 죄성, 그리고 진정한 자유를 찾아서

1.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 혹시 '이것' 때문인가요?

우리 삶의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돈 문제, 인간관계 문제, 혹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돈이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지만, 사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너무나 많아요. 오히려 돈 때문에 더 꼬이는 일도 많고요. 이런 것들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죠.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의 진짜 뿌리는 바로 '죄와 죄성' 때문이라고 해요. 이 죄가 우리를 저주와 멸망으로 이끌고, 고난과 고통까지 불러온다고 하죠. 죄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고, 그래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기는 거예요.

 

우리가 아무리 머리를 잘 굴려서 좋은 사업을 찾고 노력해도,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진정한 복을 받을 수 없다고 해요. 이처럼 죄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랍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 삶이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해지기 어렵다고 할 수 있어요.

2. 사람이 스스로 죄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가 궁금해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죄를 해결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죄의 대가는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죄를 갚으려면 스스로 죽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만드셨어요. 그것이 바로 '대속 제사'라는 개념이에요.

 

이 대속 제사는 사람이 만들어낸 방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정하신 방법이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세요. 양 한 마리가 죽는다고 해서 우리의 소중한 생명을 대신할 수 없어요. 그래서 말도 안 되는 방식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생명을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로 정하신 거예요.

 

이것은 하나님 입장에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르는 방식이었어요.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죽는 방법 외에는 우리의 죄를 해결할 다른 방법이 없었을 정도로 우리의 죄는 심각한 문제였답니다. 예수님의 죽음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던 거죠.

 

3. 예수님의 십자가는 왜 '단 한 번'의 영원한 속죄인가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의 죄를 대신한 영원한 제사예요. 구약 시대에는 매일 반복해서 제사를 드려야 했어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아닌, 자신의 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단번에 해결하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영원한 속죄'라고 불리는 거예요.

 

'영원한 속죄'라는 말은 예수님의 속죄가 다시 반복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에요. 단 한 번으로 모든 죄를 끝내셨기 때문에 다시 십자가를 지실 필요가 없죠.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해서 스스로 고행을 하거나 십자가에 달릴 필요가 전혀 없답니다. 예수님의 제사는 완전하고 영원하기 때문에 다른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아요.

 

 십자가 사건은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된 사건이에요.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죠. 우리가 이 진리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예수님이 바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고백하게 될 거예요. '우리' 모두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한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을 때 진정한 구원을 경험하게 된답니다.

 

4. 예수님의 피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나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담력'을 얻었어요. 구약 시대에는 대제사장만이 1년에 단 한 번, 목숨을 걸고 성소 안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하지만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이제는 우리 모두가 그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 거예요.

 

이것은 예수님의 몸이 십자가에서 찢길 때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던 휘장이 찢어진 것과 같아요. 예수님의 육체가 찢어짐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로운 '살 길'이 열린 것이죠.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새로운 마음을 주었어요.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단순히 죄를 용서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분의 영광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방식대로 제사를 드릴 필요 없이, 예수님 안에서 온전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5. '자기 의'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요?

사람들은 때때로 착한 일을 하거나 기부를 하면서 자신의 죄책감을 덜려고 해요. 이런 행동 자체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선함'과는 차이가 있어요. 성경에서 선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해요.

 

'자기 의'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옳다고 믿는 태도를 말해요. 내가 보기에 좋은 일, 내 생각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른 사람을 돕는다고 해도, 그 동기가 하나님의 영광이나 뜻을 위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거예요. 연예인이나 기업이 기부하는 것도 때로는 세금을 절약하거나 이미지를 좋게 포장하기 위한 목적일 수 있어요.

 

죄성을 가진 인간도 겉으로 보기에 착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지만, 그 중심에 하나님의 영광과 뜻이 없다면 그것은 '자기 의'에 불과해요. 우리는 '나는 좋은 뜻으로 했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좋은 뜻이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같은 것은 아니랍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의라고 할 수 있어요.

 

6. 죄성은 무엇이고, 왜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가요?

'죄성'은 단순히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을 넘어서는 아주 심각한 문제예요.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거역하며,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말해요. 죄성은 우리가 보기에는 좋은 생각, 다수의 의견, 전통 등과 잘 어울릴 수 있어요. 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거역하는 특징이 있답니다.

 

죄성은 끊임없이 우리 안에서 '내가 왕이 되겠다', '내가 주인이다'라고 주장하게 만들어요. 부부 싸움이나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도 결국 누가 주인이고 누가 왕이 될 것이냐를 다투는 싸움인 경우가 많죠. 이처럼 죄성은 우리를 끊임없이 자기중심적으로 만들고,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하려고 해요.

 

죄성은 세상의 철학이나 도덕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예요.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도 죄성을 이해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죄성을 완전히 해결하는 방법은 아니라고 해요. 죄성은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일을 하려고 노력해도 결국 우리를 자기중심적인 틀에 묶어두는 강력한 힘이랍니다.

 

7. 죄성은 어떻게 '자기애'와 '자기 의'로 나타나나요?

죄성은 우리 삶에서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요. 첫째는 '자기애'예요. 자기애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을 말해요. 자신을 낮추지 못하고, 모든 선택과 행동의 동기가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 되는 거죠.

 

둘째는 '자기 의'예요. 자기 의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신념이에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회피했던 것도 이 자기  때문이었어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항상 자기가 맞다고 주장하려는 성향이 바로 죄성의 자기 의에서 비롯된답니다.

 

이러한 자기애와 자기 의는 때로는 소극적으로 회의감, 비참함, 우울감, 심지어 자살 충동으로 나타나기도 해요. 반대로 적극적으로는 분노, 복수심, 혈기, 보복 심리 등으로 드러나기도 하죠. 예수님의 생명이 없는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죄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죄의 종'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8. 우리는 죄에 대해 '죽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말해요. 이 말은 우리가 죄와 더 이상 관계가 없다는 뜻이에요. 마치 어떤 사람과 관계가 끝났을 때 '너는 나에게 죽은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죠.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거나 다스릴 수 없다는 의미랍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이미 실제가 된 일이에요. 우리는 종종 '느껴야 진짜다'라고 생각하지만, 느끼지 못해도 실제인 것은 많아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은 것은 과거에 일어났지만, 그 효과는 지금도 계속해서 유효해요. 즉, 우리는 지금도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하여 죽어 있는 상태인 거죠.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앞으로 신앙이 좋아져야 그렇게 된다는 말이 아니에요. 이미 십자가에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해요.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죄의 지배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존재가 된 거예요. 이 진리를 믿고 선포할 때, 그 진리대로 우리 삶에 역사가 나타나게 된답니다.

 

9.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며, 죄가 우리를 지배할 수 있는 권세는 이미 깨졌어요. 왜냐하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이죠. 이것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께서 이루신 완전한 사실이랍니다.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이 진리를 우리 마음속에 깊이 믿고 선포해야 해요. 죄성이 우리를 다스리려고 올라올 때마다, "너는 나를 다스릴 수 없어! 나는 너에게 죽었어!"라고 담대하게 선언해야 하죠. 우리가 죄와 직접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신 진리를 주장하는 거예요.

 

자기 의나 자기 연민 같은 죄성의 모습이 나타날 때도 마찬가지예요. '내 인생은 왜 이럴까?' 같은 생각에 빠질 때,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고 주님 안에 모든 풍성함이 있음을 선포해야 해요. 이처럼 진리를 끊임없이 주장하고 고백하며 선포하는 것이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중요한 방법이랍니다.

 

10. 열등감과 죄책감, 복음의 원리로 극복할 수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열등감과 죄책감으로 힘들어해요. 자연인은 이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누구나 크고 작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죠. 돈이 많든, 공부를 잘하든, 외모가 뛰어나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열등감에 시달릴 수 있어요.

 

이러한 열등감과 죄책감은 단순히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 죄성의 토양 위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해요. 때로는 악한 영들이 생각을 통해 열등감이나 죄책감을 부추기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과 느낌에 속지 않아야 해요.

 

복음의 원리는 우리가 이미 죄에 대하여 죽었고, 죄의 지배에서 해방되었다고 선포해요. 따라서 열등감이나 죄책감이 올라올 때, 우리는 이 진리를 믿고 선포해야 해요. '나는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주장하는 거죠. 이처럼 복음의 진리를 꾸준히 이해하고 선포할 때, 우리는 열등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 있답니다.

 

 

이 내용은 새부대 교회 김치훈 목사님의 저서 "복음의 삶"과 강의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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